김응룡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사장을 역임했다. 1939년 평북 평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1983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에 취임해 2004년 삼성의 사령탑에 이르기까지 22년 동안 최장수 감독 생활을 했다. 이 기간에 통산 열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이 동메달을 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에는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감독은 감독답게, 사장은 사장답게
“해태 시절이었어요. 구단주인 박건배 그룹 회장이 제가 감독을 쉽게 대하면 선수들이 안 따르죠’ 하고는,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감독님, 제잔 받으세요’ 하면서 저를 떠받들더군요.”
한국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인물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전 사장의 말이다. 일본의 ‘국민 영웅’이 나가시마라면, 한국의 국민 스타는 단연 김응용이다. 요즈음엔 그가 제자인 선동열 삼성 전 감독을 떠받들다시피 한다. 그에게 영향을 미칠 언사는 한마디도 않는다. 2005년 시즌부터 감독자리를 제자에게 물려주고 사장이 된 그는 항상 운동장 한쪽에서 야구를 지켜본다.
어쩌다 다른 구단 사장들이 경기에 대해 물으면 나는 야구 몰라요’라며 노코멘트다. 삼성 선동열 감독에 대해 기자들이 물어올 때에도 ‘나는 잘 모르겠어’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사장은 감독이 소신껏 자신의 야구를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지론에는 해태 박건배 회장의 영향이 컸다.
지난 1983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시작해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을 지내던 2004년까지 22년간 프로야구 감독을 역임하고, 구단 사장에 오른 행복한 야구인 김응용. 그는 감독 재임 시절 통산 열 차례(해태9번, 삼성 1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의 성공 사례는 이미 각 기업과 학교에서 연구 테마로 정해진 바 있고, 삼성 경제연구소에서는 ‘빅토리 이론’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성공의 원동력
그 성공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중 하나는 시대를 보는 ‘눈’이다. 외부에 알려진 김응용의 이미지는 때론 성난, 때론 우스꽝스런 코끼리다. 산만한 덩치의 그가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은 차라리 귀엽기까지 하다. 그러나 가끔 주위의 기물을 파손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땐 아무에게도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다.
감독 김응용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 늘 단답형으로 문답을 하여 선수들에게 어려운 상사로 여겨졌다. 한편으로는 편애 없는 기용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간헐적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면서 선수들과 코치들을 통제한 것이다. 이런 김응용식 리더십은 20여 년간 계속됐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해 그는 변했다. 어눌하고 무뚝뚝한 사람에서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평소 말이 없던 그가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양으로 변했다는 증언은 구단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삼성의 A선수는 ‘송구스런 표현이긴 하지만 감독님의 캐릭터가 귀엽게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해태 사령탑이던 시절, 김응용은 타자가 홈런을 치면 조용히 있다가 화장실에 가서 박수를 쳤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덕아웃에서도 친다. 딱 세 번만. 그것도 남이 볼까 봐 어수선한 틈을 타서 짝짝짝’ 하고는 금세 손을 내린다.
하지만 선수들은 다 본다. C 선수는 ‘감독님께서 속마음을 드러내니까 훨씬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속이 탈 때에는 어떻게 할까? 삼성 감독 시절인 2001년 2월 미국 피닉스에서의 전지 훈련 중 있었던 일화 하나가 그것을 보여준다. 이승엽이 훈련을 하루 쉬었다. 오렌지를 칼로 까먹다가 손을 베었던 까닭이다. 김응용은 오렌지를 칼로 까먹었다는 말에 기가 막혔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오렌지 먹는 법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호텔 프런트에 오렌지 한 바구니를 부탁했다. 그런 다음엔 선수들을 대회의실에 집합시켰다. 김응용은 오렌지 한 개를 들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손으로 까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오렌지는 이렇게 까먹는 거야, 알겠어?”
자기 성질을 죽인 그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었다. 조직 생활에 익숙한 80년대, 90년대 선수들에게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리더십으로, 자유분방한 감성 세대인 2000년대 선수들에게는 웃는 얼굴로 리드를 한 것이다.
사장이 된 2005년부터는 검정색 양복에 넥타이를 맨, 중년의 기품을 지닌 신사로 변신했다. 전국을 돌며 삼성의 얼굴, 대한민국 야구의 상징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인 선동열 감독의 야구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5년 시즌 중 김응용이 선동열을 그라운드에서 만난 것은 열번이 채 안 됐다.
그러나 자기 할 말은 한다.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한 뒤 스포츠 조선이 주최한 야구인골프대회 축사에서 그는 갑자기 돌발적인 발언을 했다.
내가 사장을 1년 해봤더니 알겠더라’며 시작된 그 발언의 요지는 프로야구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뜬금없는 그의 발언에 장내는 술렁였다. 왜 갑자기 행사에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했을까? 사실상 그 얘기취지는 축구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데 야구는 토양이 척박하니 한없이 치솟는 구단의 인건비 등을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평소 공식석상에서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그는 사실 이 날에도 발언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옆에 앉은 김재하 삼성 라이온즈 단장이 ‘축사 순서에 사장님이 들어 있습니다. 한 말씀 하시죠’라며 권유해, 일어서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는 연단에 서서 작심한 사람처럼 프로야구가 이대로 가면 몇 년 내에 사라질 것처럼 경고했던 것이다.
이 돌발 발언에 대해 당시 박용오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거취와 관련된 목적성 있는 발언이라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여부야 어떻든, 이 사건은 어떤 상황에서나 자기 할 말은 하고 마는 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김응용은 ‘구단을 경영하는 사장 입장에서 당연히 할 이야기를 했는데 왜 이리 소란한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일파만파로 퍼진 그 말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그러고도 선수 · 코치 · 감독· 사장의 입장이 다르고, 각자 자기의 위치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이름이나 사람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지위에 따른 역할을 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말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화제를 다양하게 이끌며, 세월이 익어가는 술잔을 권할 줄 아는 중년의 신사 김응용. 그에게는 예전의 무뚜뚝함 대신 세련된 카리스마, 중후한 인간의 향기가 솔솔 풍기고 있다. 손오공 티비
김응용의 TIP 자리에 맞게, 시대에 맞게
모든 것은 변한다. 과거와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적응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관이다. 정확하게 사물을 인식하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적응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성이 밑바탕되어야 한다. 인간성이 없는 변화는 적응이 아니라줏대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주관이 뚜렷해야 한다.
둘째, 폭넓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 적응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꾸준히 실력을 연마해야 한다.
셋째,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편견은 세상을 위험하게 만든다. 개인의 적응도 어렵게 한다.
참조 : 한국을 대표하는 야구인 선동렬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