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은 프로농구 삼성 썬더스의 센터 출신으로 1974년생이다. 2m7cm, 115kg의 거구에 날렵한 몸놀림과 정확한 슛으로 10년 이상 한국 농구의 대표적인 선수로 각광받았다. 큰 키를 이용한 두뇌 플레이와 적중률 높은 중거리 점프슛이 강점이다. 휘문고와 연세대를 졸업했다.
짧고 논리 정연하게, 그것이 달변의 비법
주어진 대본이 없어도 술술 얘기하는 국보급 센터 서장훈. 그런 그가 대본 읽듯 하는 말이 있다.
“선수 생활이 끝나면 농구에 미련을 두지 않겠습니다.”
이 말은 앞날을 생각하기보다는 선수로서의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런 자세 덕분에 그는 10년 이상 태극 마크를 달았다.
팬들에게 ‘농구의 진수’를 선보여온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는 오로지 ‘최고’이다. 걸출한 플레이나 뛰어난 성적이 아니면 눈에 차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자들은 어지간히 잘해서는 ‘잘했다’고 보도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그런 경기력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말솜씨도 가지고 있다.
그와 처음 인터뷰를 하는 기자들은 대개 예상과는 다른 상황을 접하게 된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중 십중팔구는 그의 거구에 위압당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갖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제로 TV 화면에 잡힌 그의 표정은 늘 무표정하고, 말투는 무뚝뚝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옛 친구와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그에게는 대화를 포근하고 편안하게 이끌어가는 재주가 있다. 청산유수형은 아니지만 감칠맛나는 표현을 적절히 섞어 쓰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데 귀재다. 성의 있고 조리 있게 말을 하기 때문에 그를 처음 만난 사람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곤 한다.
서장훈과의 대화에 빠져보자.
“코트에 서는 순간에는 언제나 결승전이라고 생각한다. 대충 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쌓아온 ‘국보급 센터’라는 명성에 흠집을 내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서른이 넘었지만 ‘적당히’는 성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부상으로 뛰지 못할 때 ‘꾀병이 아니냐’며 농담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내가 초등학생이냐’며 익살스럽게 답한다. 꾀병을 핑계삼는 것은 초등학생이나 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훈련으로 근육들을 유연하게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해서 괴롭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시즌이 시작되면 으레 나오는 질문이 목표에 대한 것이다. 여느 선수들이 MVP나 팀 우승 등에 대해 답하는 것과 달리, 서장훈은 ‘나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정말 잘 뛰겠다’고 말한다.
키 큰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서장훈에게도 있다.
“큰 키는 농구할 때 빼고는 좋을 때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그래요.”
키 큰 사람을 마냥 부러워하지만 말고, 고충도 이해해 달라는 이야기다. 그런 고충 중에는 거구에 대해 보이는 일반인들의 부담감도 있다.
사실 서장훈의 인상은 다정다감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러다 보니 사진기자들은 ‘좀 웃으세요. 자, 얼굴 표정을 환하게 하시고~’를 연발한다. 그러면 그는 ‘이미지 바꾸다 10년 세월 보냈어요. 그냥 그림 나오는 대로 가죠’라며 자신만의 표정을 짓는다. 연출이 아닌 자연스러움을 팬들에게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TV 화면이나 신문의 사진에는 언제나 무뚜뚝한 표정이 여과 없이 나간다.
농구인 중 가장 인터뷰를 잘한다는 평판에는 손을 내젓는다.
“다만 인터뷰 때 하나의 포인트는 둡니다. 대개의 선수들이 오늘 어떤 게 잘된 것 같다, 어떻게 플레이를 했다는 등의 답변만 하는데 그건 피해가려고 합니다. 조금 특별한 얘기를 하려고 신경을 쓰는 거죠. 말은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데 휘문고 시절부터 하도 인터뷰를 많이 해서 부담은 없습니다.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말은 논리 정연해야 합니다. 길게 얘기하는 것보다는 짧게 정리하는게 요령이죠.”
하지만 그의 달변 뒤에는 노력이 숨어 있다. 농구계에서는 서장훈이 운동을 그만둔다면 대학 강단에 설 것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명석한 두뇌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니, 똑똑해지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프로농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되자 많은 선수들은 불평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포지션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그의 포지션이 용병과 호흡을 잘 맞춰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대단하다. 자유계약제가 되면서 준NBA급 센터들이 대거 몰려오자, 그는 특급 슈터 못지않은 중거리슛으로 생존을 모색해 갔다.
하지만 그의 진짜 매력은 당당함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달변가 서장훈을 돋보이게 하는 힘이다. 한번은 심판의 오심에 심하게 항의하다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당하고 경기까지 망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서장훈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상황을 설명해, 결국 모 심판의 사과를 받아낸 적이 있다. 경기 중에는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이없는 오심에 대해서는 그의 별명대로 골리앗만큼이나 무섭다. 하지만 상황을 정리하는 수준은 다윗의 돌팔매질만큼이나 매끄럽고 정확하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항상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트를 벗어난 서장훈은 철학자 칸트로 불릴 만큼 사색을 즐긴다. 책은 물론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스스로를 정리한다. 특히 사색을 통해 나온 그의 유머는 달변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필요한 시점이 오면 절묘하게 유머를 곁들이며 분위기를 자기 쪽으로 몰고 간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그와 마주치며 긴장했던 사람은 그가 던지는 유머 한 방에 백발백중 넘어간다.
서장훈의 화술에 대해서는 농구판의 달변가 최희암 연세대 감독도 인정을 한다. 그를 가르쳤던 최희암은 감독은 선수와의 기 싸움에서 항상 이겨야 한다. 하지만 장훈이와 얘기할 때에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논리정연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거나 물어오기 때문에 긴장을 늦췄다가는 말싸움에서 진다. 그러면 감독으로서 장훈이를 휘어잡을 수 없어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그의 말솜씨는 연예계에도 이미 소문이 나 있다. 또박또박한 말투에 논리 정연한 이야기 전개, 그리고 유머까지 갖춘 인터뷰의 달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다. 가끔 신문 일면을 장식하는 여자 연예인과의 스캔들도 그의 말솜씨와 연관이 깊다. 그 스캔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스캔들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그의 뛰어난 말솜씨를 대변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서장훈에 대한 오해를 벗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늘 TV에 무뚝뚝한 표정이 잡히다 보니 거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잠시만 그와 이야기를 해보면 그가 ‘친절한장훈씨’임을 금방 알게 된다. 옆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거인병에 시달리는 김영희 씨 돕기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2005년 고생하는 선배를 위해 조용히 성금을 기탁했다.
그리고 과격하다는 말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체격이 상대를 압도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잔잔하고 감미로운 영화를 즐기는 세심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사색을 즐긴다. 밤 늦게까지 비디오나 TV를 자주 본다. 또 책도 많이 읽는 편이어서 새벽으로 접어들 무렵에 잠을 청하는 일이 자주 있다. 또 집에서는 애완견을 기를 만큼 아주 부드러운 남자다.
셋째, 대식가일 것이라는 지레 짐작도 금물이다. 서장훈은 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스타일에 가깝다. 특히 음식이 맞지 않는 원정 경기 때에는 물에만 밥으로 대충 때우고 경기를 할 때도 있다.
또 코트 매너가 좋지 않다는 것도 잘못된 설이다. 이에 대해 그는 ‘심판에게 항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잘못된 것은 문제를 제기해야죠’라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 판단했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인정을 하는 스타일이다.
한국 농구에서 유일하게 용병과 리바운드 싸움을 하는 서장훈. 하지만 그는 농구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대해서도 해설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다. 어떻게 그처럼 야구에 해박할 수 있을까? 그는 원래 야구를 했다. 서울 학동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는데, 중학교에 야구부 인원이 꽉 차 잠시 농구부로 갔다가 아예 주저앉게 된 것이다. 또 그는 스포츠지뿐 아니라 종합 신문도 꼼꼼히 본다. 그러다 보니 메이저리그 상황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연세대 1학년이던 1994년. 당시 최희암 감독은 러닝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그를 담금질시켰다. 훈련이 너무 버거웠던 그는 ‘차라리 농사를 짓겠다’며 팀을 무단 이탈했다. 다행히 최희암의 설득으로 코트에 다시 선 그는 그 해 겨울 연세대를 농구대잔치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최우수선수로 화려하게 등극, 서장훈 전성 시대를 열었다. 스포츠중계 손오공 티비
서장훈의 TIP 말실수를 안 하는 법
나는 인터뷰 때 핵심만을 짧게 말한다. 많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는 특히 단답형으로 얘기한다. 그래야 논란의 핵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운동선수가 순수하게 대답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언제나 운동 외에 다른 것이 없을까 궁금해 한다. 그래서 너무 또박또박 얘기하면 오히려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말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말 실수를 안 하는 법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말을 많이 하더라도 다른 팀이나 상대에 관계된 얘기는 피한다. 특히 평가하는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 평가가 맞더라도 상대는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둘째, 상대에 대해 나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세상은 좋은 말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왜 험담을 하는가?
셋째, 자극적인 질문은 무조건 피한다.
목적을 갖고 하는 질문에는 실수를 하기 쉽다. 가급적 노코멘트를 하는게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는 길이다.
참조 : 완급 조절의 명수 정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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