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태는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였다. 1970년생으로 인천 동산중고와 한양대를 거쳤다.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했고, 프로에서는 선발 투수 세계 연승 신기록(22연승)을 달성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야구가 동메달을 따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좌우명은 ‘항상 공부를 하자’이고 취미는 낚시다. 프로 선수 은퇴 이후에는 세계적인 야구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여유를 가진 자가 게임을 리드한다
웰빙 산업이 번창하는 요즘의 인기 검색어 중 하나는 복식 호흡이다. 스포츠인들 사이에도 심호흡을 통해 집중력 향상을 꾀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극도의 순간 집중력이 요구되는 양궁이나 사격 선수들이 선호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태릉 선수촌에서는 가끔 호흡을 통한 집중력 특강이 열릴 정도다.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의 정민태도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호흡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많은 요령을 알고 있다. 수많은 게임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호흡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2003년에 세운 한국 프로야구의 금자탑인 선발 투수 세계 연승 신기록(22연승)도 호흡의 요령을 몰랐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민태의 한양대 2년 선배인 김동수(현대 포수)는 그를 ‘완급 조절의 명수‘라고 단언한다. 강약 조절을 통한 타자들과의 타이밍 싸움, 즉기싸움에서 그는 항상 우위에 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예전에는 빠른 공만 고집할 때도 있었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지금은 자신의 나이를 감안해 타자의 스타일에 따른 강약 조절을 철저히 해나간다는 얘기다. 또 위기 상황이 닥치거나 어려운 타자를 앞에 두었을 때에는 호흡을 길게 끌어 상대의 리듬을 깨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포수 자리에 선배가 앉아 있을 경우 투수는 포수의 사인을 따라간다. 하지만 정민태는 직접 사인을 낸다. 자신의 호흡 리듬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정민태는 프로에 입단한 1992년부터 자신이 직접 사인을 냈다.
“프로 첫 등판이었어요. 마운드에 섰는데 포수인 김동기 선배가 사인을 내더라구요. 그래서 고개를 흔들고 제가 사인을 냈어요.”
게임 후 정민태는 김동기에게 불려갔다. 김동기는 황당한 일을 당한 얼굴로 ‘너, 나 무시하는 거지? 하며 다그쳤다. 신인 투수 정민태는 공포 분위기를 느꼈지만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인은 투수의 권리이고 의무입니다. 그래야 안타를 맞아도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발전이 있습니다.”
김동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포수는 타자의 일거수 일투족과 팀 전체 분위기를 읽고 사인을 낸다. 네가 얼마나 잘 던지는지 몰라도 선배에게 항명하지 말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정민태는 김시진 투수 코치에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 문제로 김시진 코치와 금광옥 배터리 코치, 정동진 감독이 머리를 맞대었다. 포수 출신인 정동진 감독은 사인은 포수가 내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정민태에게는 전담 포수인 장광호를 붙여 예외를 인정했다.
정민태가 이처럼 사인에 연연하는 것은 자신의 호흡 때문이다. 자신의 리듬을 탄 투구를 해야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즉 호흡 조절에 따른 투구를 하려는 것이다. 하일성 KBS 해설 위원도 ‘투구 리듬을 탈 줄 안다. 한 박자 빠르게, 혹은 늦게 던지는 것을 잘 조절한다’며 정민태의 롱런을 호흡의 승리로 설명한다.
그는 일본 요미우리에서 2001년부터 2년 동안 활동하면서 2승1패밖에 거두지 못했던 것도 사인 탓으로 보고 있다.
“저는 선발만 보장되면 일본에서도 1년에 10승은 자신 있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마운드에 서면 벤치에서 직구나 슬라이더 정도로 구질을 한정해 버리는데 어떻게 잘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일본 타자들은 직구에 능해 변화구를 많이 뿌려야 하는데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벤치에서 일방적으로 구질에 대한 사인을 내니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거죠.”
결국 그는 거의 2군에서 생활하거나 셋업맨으로 뛰다 스스로 1년 먼저 귀국을 했다. 이때 요미우리의 조건은 일본 내 다른 구단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요미우리도 정민태가 다른 구단에서 뛰면 더 잘 던질 인재로 보았다는 얘기다. 당시 오릭스에서 뛰던 구대성도 정민태에게 팀을 옮길 것을 권유하곤 했다.
일본에서 아픔을 겪은 정민태는 2003년 한국에서 17승 2패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국에 온 그는 위기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한 템포 천천히 볼을 던졌다. 그럴 때에는 경황이 없어 던지는 데에만 급급하기 쉬운데 그는 여유를 찾기 위해 짐짓 견제구 등을 던지면서 시간을 번 것이다. 그리고는 느리고 긴 호흡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곤 했다.
정민태의 호흡은 구체적으로 보면 마인드 컨트롤이나 자기 암시다. 본격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경기 전부터 시작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동산고 시절부터 계속해왔다.
“기독교 신자인데, 기도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마인드 컨트롤에 눈을 뜨게 됐어요. 경기 전이나 마운드에 오른 후 혼자 중얼거리곤 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내용을 맘껏 표현하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않은 날에는 수많은 관중들의 함성에 위축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제구가 잘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마인드 컨트롤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 LG전에서는 5이닝 동안 12실점을 하고 물러나기도 했다. 그의 야구 인생 최악의 피칭이었지만 경기 전 마인드 컨트롤은 잘된 편이었다. 경기 중 마인드 컨트롤이 안 돼 벤치에 교체를 요구했지만 김재박 감독은 ‘고참도 맞으면서 느낄 필요가 있다’며 끝내 교체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심호흡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면서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경기 도중 선수들은 곧잘 흥분을 한다. 특히 위기 상황에 몰린 투수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정민태는 심호흡으로 긴장된 몸을 이완시킬 줄 안다.
인체의 자율 신경에는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부교감 신경이 작용하여야 한다. 부교감신경을 자극하자면 복식 호흡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민태는 이미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이런 과정을 체득한 것이다. 특급 투수 정민태의 또 다른 이름은 ‘호흡의 달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손오공 티비
정민태의 TIP 투수가 타자에게 이기는 법
투수는 외롭다. 마운드에 서는 순간 혼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야수들이 있지만 투수가 타자를 막지 못하면 팀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투수는 장판교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에 맞선 장비의 기개를 갖춰야 한다. 마운드에 선 투수는 다음 세 가지를 마음에 새겨야 승리할 수 있다.
첫째, 어떤 타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타자의 명성에 위축되면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없다. 그러면 주무기 한번 뿌려보지 못하고 안타를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무리 유능한 타자라도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투수가 자신을 갖고 상대하면 이길 확률은 70% 이상으로 올라간다.
둘째, 내 공에 자신감을 갖는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인정하랴. 투수가 자기 공의 위력을 의심하면 좋은 공을 던지지 못한다. 그러나 투수가 자신의 공을 믿으면 의심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뿌릴 수 있기에 더욱 위력적인 공이 된다. 셋째,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빠른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마운드에서는 행동을 빠르게 하다 페이스가 상대 타자에게 넘어가는 수도 있다. 투수의 의도대로 서두르지 말고 게임을 이끌어야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다.
참조 : 프로야구계 최고의 낙천주의자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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